삶을 굴러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는?
먹고 싸는 것이다.
먹고 싸는 두 개의 바퀴가 튼실할 때 비로소 나머지 것들 역시 온전해질 수 있다.
먹고 싸는 것이야말로 인간 조건의 대전제라 할 수 있겠다.
바퀴가 두 개니까 하나만 멀쩡하면 되는 거지?
천만에. 둘 중에 어느 하나가 튼튼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커버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건강할 때에만 수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비로소 수레다울 수 있다.
정말?
그럼.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건 좀 안다 하는 인류가 그 동안 너무나도 공정치 못했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대해서는 오냐오냐하면서도 싸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애써 외면하며 노골적으로 냉담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똥, 그는 누구인가?
똥에 대한 정보 역시 지나치게 많다 보니 정작 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 중에는 외과 의사인 나보다 똥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더 많은 것을 아는 이들도 많다. 많이 아는 것이야 나쁠 게 없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게 문제다. 이미 말한 대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면 정작 핵심이 되는 정보를 놓치기 쉽고, 자칫 호기심을 채우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숲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똥은 대사다.
외국에 파견되는 대사나 특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자신을 파견한 대통령이나 국왕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가 있다면 대사가 아니거나 대사의 본분을 망각한 자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똥을 대사(ambassador)라고 하는 것이다. 똥은 몸이 개개인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이다. 그렇기에 똥은 똥 자체로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지켜주는 많은 심부름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지키고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중대한 역할을 맡은 우리 몸의 하인 중 하나가 바로 똥이다.
똥은 열이자, 통증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몸의 심부름꾼인 열이나 통증에 대해 생각해보자. 열(fever)은 반갑지도 않을뿐더러 지극히 위험한 존재다. 체온이 섭씨 39도만 넘으면 제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맥을 못 춘다. 불과 2도 차이인데도 불구하고! 달 위를 걷고 화성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인간이 단 2도의 온도 차이에는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한 것이라니, 우습고 아이러니하다.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이 지경인데 아이들이야 어떻겠는가? 눈동자가 돌아가고 경련까지 일으키기 일쑤다. 아이도 아이지만 이쯤 되면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가 먼저 까무러칠 지경이 된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열은 분명히 반갑잖고 위험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편협한 생각이다. 열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열이 없으면 인간의 생명은 지극히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이내 지구에서 멸종하고 말 것이다.
충수염(맹장염)에 대해 생각해보자. 염증이 생긴 충수를 그대로 두면 이내 곪아 터져 배 안은 고름으로 뒤덮이게 되는데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복막염이라고 한다. 물론 복막염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인간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왜? 바로 열이나 통증과 같은 충성스러운 하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면 열이란 하인이 즉각 행동을 시작한다.
그래서 충수염에 걸린 사람은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증이라는 하인도 즉각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면 우측 아랫배가 아프고, 살짝만 건드려도 자지러지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열이나 통증같은 충성스러운 하인이 있기에 사람은 충수염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손을 써서 생명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충수돌기가 곪아 터져 가는데도 열이나 통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불편 없이 밥을 먹고, 회사로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잠을 자다가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말 게 뻔하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열이나 통증은 달갑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진정 고마운 존재다.
아이가 열이 난다며 병원을 찾는 엄마 중에는 우선 아이의 열부터 내려달라며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터뜨리는 이가 많다. 열이 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병원으로 달려온 엄마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열이 문제가 아니라 열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열이 난다는 것은 아이의 몸에 문제가 있으니 그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신호다. 그런 우리 몸의 충직한 충고와 아우성을 무턱대고 잠재우려고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현대 의학도 속수무책인 강적을 들라면 단연 암(癌, cancer)을 꼽을 수 있다. 도대체 암은 왜 그다지도 무서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충실한 종인 열이나 통증 같은 하인들이 암 앞에선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암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열이나 통증 같은 하인이 암의 손아귀를 빠져나와 경고를 줄 때는 이미 늦었다.
똥 역시 열이나 통증같이 인간의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우리 몸의 심부름꾼이자 하인이다. 이런 이유로 똥을 우리 몸의 대사(ambassador)라고 하는 것이며, 열이나 통증과 같은 반열에 두는 것이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똥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변비 끝에 아우성치며 똥꼬로 몰려가는 누런 똥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적막한 화장실 변기 아래를 휘돌아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대장 깊숙한 곳에서 나서 탐스런 계곡을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가죽 피리 소리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변기 바다를 밟고 옥 같은손으로 엉덩이 아래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물컹한 똥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싸질러 놓은 똥은 다시 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변기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나의 몸뚱이는 누구의 몸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만해 한용운 선생님께서 화내시려나? 역정을 내시면 달게 받기로 하고. 평범하고 하찮은 저녁 노을 하나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한용운 선생님처럼 우리 역시 똥을 통해 우리 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똥에 관해 속속들이 안다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의학을 접할라치면 머리가 아프다. 의사인 나도 그렇다.
똥오줌은 질병을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한 정보 제공자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의료가 발달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본에 충실한 이 그림은 언제 봐도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제부터라도 우리 몸의 충직한 하인이자 전령인 똥오줌을 홀대하지 말고 친근히 대하자. 그렇게 할 때 똥오줌 역시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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